“죽이고 싶진 않았다. 천천히, 공개적으로, 돌이킬 수 없게 무너지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 도입
복수극은 많지만, 《더 글로리》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김은숙 작가의 대담한 전환점이자 안길호 감독의 냉정한 연출이 더해진 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단순히 트라우마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트라우마 속에 들어가 머물고, 곱씹고, 감정의 층을 조용히 벗겨낸다.
화려한 로맨스나 정의로운 주인공은 없다. 그 대신 관객은 ‘동은’이라는 인물을 통해 복수라는 말의 무게, 고통, 대가를 끝없이 바라보게 된다.
🧱 이야기: 복수는 의식이자 생존 방식
문동은(송혜교)은 복수를 통해 무언가를 되찾고자 한다.
하지만 그 방식은 피와 칼이 아니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 감정의 제거, 그리고 의도된 무표정으로 쌓아올린 '무너뜨리기'의 예술이다.
이 드라마의 탁월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복수는 통쾌하지 않다. 시원하지도 않다. 오히려 문동은의 복수는 그녀 자신을 서서히 깎아내리는 행위에 가깝다.
트라우마를 견뎌낸 자가 트라우마의 도구가 되어가는 역설이, 시청자의 심장을 찌른다.
🎭 연기: 침묵 속의 분노
송혜교의 경력 중 가장 대담하고 감정적으로 절제된 연기다.
표정은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엔 오래된 울분과 냉정함, 그리고 깃발처럼 펄럭이는 복수의 감정이 서려 있다.
임지연은 박연진 역을 통해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현대적 악의 얼굴을 보여준다.
예쁜 말과 단정한 외모 뒤에 숨겨진 괴물성은, 오히려 더 섬뜩하다.
염혜란이 연기한 ‘강현남’은 이 복수극의 인간적인 숨구멍이 된다.
상처받은 두 여성이 서로를 동맹으로 받아들이는 그 감정선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중심축이다.
🎬 연출: 침묵과 여백의 미학
안길호 감독은 속도를 과감히 버린다.
음악은 최소화됐고, 침묵은 극의 핵심 감정으로 작용한다.
긴 정적, 멈칫하는 시선, 닫히는 문 너머의 공기까지… 모든 연출이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머물게 한다.
시각적으로는 철저한 절제의 미학이 지배한다.
회색빛 톤, 차가운 조명, 비어 있는 듯한 공간 구성.
문동은이라는 인물 자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듯한 연출이다.
✍️ 대본: 김은숙의 가장 조용한 도전
로맨스와 대사로 승부하던 김은숙 작가가 모든 ‘김은숙적’ 요소를 걷어냈다.
말은 줄어들었고, 감정은 안으로 향하며, 대사 하나하나가 감정의 칼날이 되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녀의 ‘절제력’이다.
설명하지 않는다.
시청자가 눈빛과 침묵, 맥락을 스스로 읽기를 요구한다.
그 신뢰는 곧 긴장으로, 감정으로, 몰입으로 이어진다.
⚖️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
《더 글로리》는 쉽게 응답하지 않는다.
문동은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이 드라마는 복수가 옳은지 그른지를 묻지 않는다. 단지 그 대가가 무엇인지 질문할 뿐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거의 모든 것이다.
트라우마는 사람을 바꾸고, 복수는 그 사람마저 태워버린다.
이 드라마는 그 과정을 차분하게, 무섭게 보여준다.
💬 인상 깊은 대사
“죽이고 싶진 않았어요. 살게 하고 싶었어요. 계속 무너지게.”
“나는 치유하려고 이걸 시작한 게 아니에요. 기억하려고 한 거예요. 당신을 부숴버리기 위해서.”
⭐ 총평
9.5 / 10 — 감정의 화염이 조용히 타오르는 심리 복수극의 결정판.
《더 글로리》는 보여주기보다 느끼게 하는 드라마다.
관객은 오락의 쾌감보다 잔상과 상처를 안고 떠난다.
그게 바로 이 작품이 뛰어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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